나라가 이런 상태로 가서야 되겠는가.
이른바 참선비란 조정에 나아가면 한 시대의 도(道)를 행하여 우리 백성들로 하여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고.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5년 세웠다.참선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태평성대를 이룩할 통치자가 존재하고 있는가.아무리 보아도 본인 능력은 말할 것 없이 어진 재상이나 참선비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참선비가 없었던 것도 불행이지만.풍부한 학식과 탁월한 이론.
천재요 애국자요 학자요 경세가였던 율곡과 다산은 때와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참선비였다.
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을 참선비를 대망했건만 참선비를 발탁하여 국난을 해결할 군주도 없었기에 나라는 끝내 망하는 비운을 당하고 말았다.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
19세기 말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였다.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결국 을사늑약과 강제합병조약으로 귀결되었다.
단지 두 조약 간의 차이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청나라가 인정한다는 내용이 강화도 조약에는 없는데.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